여기서 '새시'는 알루미늄 금속재 창호 틀을 말하며 아직까지 새시라는 단어보다 새시, 새시라는 용어가 더 일반화되어있다. 하지만 새시, 새시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는 용어이며 '새시'는 새시(Sash)의 비 표준어로 영어로는 Wwindows and Doors라고 표기하지만 새시(Sash)의 뜻은 미국, 영국에서 내리닫이 형식의 창틀 유리창을 뜻하는데 우리 말뜻으로 해석하면 온갖 창과 문을 통틀어 말하는 '창호'라는 뜻과 겹친다.
새시(창호) 시공 현장 실리콘 코킹 작업 후기 글을 쓰려고 하다 잠시 사전적 용어를 찾아 헤매었지만 결론을 못 구하고 그냥 일반적인 새시라는 말로 정리해서 글을 쓰려고 하니 이점 여러분들께 너그러운 양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실리콘 코킹 관련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용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공부할 수 있어 필자도 환영하는 바이다.
새시(창호) 현장에서 실리콘 코킹 작업은 단종면허 대규모 공사가 아닌 주로 영세업체들이 오래된 주택이나 아파트 세대에 창호를 교체하는 업종으로 개인의 의뢰를 받거나 인테리어 업자 소개로 일을 하게 되는데 세대 평수에 따라 다르지만 약 28평 창호 교체 공사는 1~2일 이면 끝나는 작업에서 실리콘 코킹 후기이다.
기본적인 창틀 실측을 끝내고 샷시(창호) 사양과 기타 작업 사항을 집주인 또는 인테리어 업자와 견적과 함께 공사가 결정이 되면 새시 공장과 유리 공장에 발주를 넣고 공사 일정을 잡게 되는데 예정에 없던 많은 비가 오거나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면 시공 일정은 다소 변경될 수도 있다.
시공하기 전 준비 작업 과정이 완료되면 예정된 날짜에 시공을 완료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작업자들은 분주히 움직이게 된다. 원활한 작업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창호들 주변에 가재도구를 거실 한쪽으로 치우고 모으고 나서 바닥에 보양지를 깔고 기존에 있는 낡은 창호들을 각종 철재 공구와 충전 드릴로 빠르게 뜯어 해체한다.
작업에는 어쩔 수 없는 공사 소음이 발생하기에 미리 주변에 공지하였지만 조심조심 작업을 하기보다 빠르게 작업하는 게 주변 이웃들에 불편을 덜어주는 지름길이다. 기존 새시(창호)를 전부 제거할 때쯤이 되면 고층 건물의 경우 필요한 사다리차와 공장에서 새시(창호) 짐을 실은 화물차가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새시 창틀과 유리창, 방충망, 실리콘 등 관련 자재들을 고소 사다리 차를 이용하여 서둘러 작업 층까지 안전하게 오전에 다 올리고 지정한 위치에 배치한 뒤, 제거한 기존의 창틀을 이때 지상으로 내린다. 사다리차를 반나절 오전 대여료만 지불하는 선에서 끝내야 견적 초과가 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여기까지 대부분 오전 작업이 끝나게 되고 작업자들과 함께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곧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오후가 시작되면 새 새시(창호)를 설치하는 시공 작업으로 능숙한 기술자들은 서로 맡은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하게 되고 수평을 보면서 하나하나 창틀을 바닥과 벽면에 고정해 나간다. 해당 작업이 중간쯤에 진행되면 이때 옆에서 단순히 잡아주는 보조 역할에서 본격적인 실리콘 코킹 작업을 진행한다.
벽면과 샷시 창틀 틈새를 우레탄 폼을 이용하여 넉넉히 메꾸고 잠시 후에 폼이 굳으면 주변을 정리하고 마스킹 테이프와 실리콘 헤라를 이용하여 실리콘 코킹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전용 우레탄 실리콘을 반드시 사용해서 외벽, 내벽 틈새를 꼼꼼히 막는 실리콘 작업을 해야 한다.
새 샷시 창틀이 고정되고 유리 창호를 껴 넣고 문들이 잘 열리는지 수평 작업을 꼼꼼한 점검이 끝나면 창호에 코킹 안된 곳을 찾아 마스킹 테이프가 필요 없는 구간은 신속하고 깔끔하게 실리콘 코킹으로 마감한다.
이렇게 외부 현장에서 유리 또는 샷시(창호)를 시공하면서 실리콘 코킹 작업을 하다가 상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에 큰 반도체 현장에서 안전관리자의 지적을 받으며 실리콘 코킹 작업을 하다 보면 외부 현장이 얼마나 힘이 들고 위험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비교도 해보지만 그래도 크고 작은 현장마다 서로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하는 현장은 결국 똑같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좋은 시대에 살면서 아직까지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그저 일한 노임이나 떼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넋두리하듯이 중얼대는 나 자신을 보면 아직까지 옛날 쌍팔년도 꼰대 문화에서 못 벗어난 슬픔이 있다.